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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도에 염전이 있었다. 홍승준 선임기자l승인2017.07.17l수정2017.07.17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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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도내 염전이 있었다 - 80년대지도
                                          

이들의 염부의 노력으로 영종도소금이 부활한다. 좌측부터 최영배반장,강상수,장명기,김용관,김선복

<소금>

류시화

세상의 모든 식탁 위에서
흰 눈처럼
소금이 떨어져 내릴 때
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눈물이 있어
이 세상 모든 것이
맛을 낸다는 것을

■ 인천 염전의 유래
우리나라는 소금의 생산시설이 없어 자급자족이 안 돼 조선시대에는 청나라소금을 수입하였고 1907년에야 근대적인 염전(인천 주안염전)이 만들어졌다.
1921년 남동염전 1926년 군자염전 1933년 소래염전이 증설되어 인천은 전국최대소금생산지였다. 6. 25 전쟁이후 정부에서는 ‘소금증산 5개년계획’을 수립하여 1958년에는 염전면적이 114k㎡로 최대 규모이며 소금생산량은 65만톤이 되었다. 1961년 ‘소금 국가전매제’의 폐지로 1963년 11월에는 정부가 관리하던 주안, 소래, 남동염전이 민영화되었으며 최초의 염전인 주안염전은 1968년 폐업하고 그 자리에는 ‘산업단지’가 조성되었다.
염전자리가 한국의 산업화에 기여한 것은 평가되어야 한다. 현재 새 도로명주소에 ‘인천 남구 염전로’로만 그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 영종용유지역 염전
1945년 이후 서해안지역은 간척사업으로 염전이 활발하게 조성되었으며 ,영종지역은 1953년에 월남민들의 생계를 지원하기위해 ‘난민구호사업’의 일환으로 삼목도에 난민정착지염전이 조성되었다. 또한 홍익대(신불)와 건국대(남디) 학교법인들이 국가시책과 수익사업의 목적으로방조제를 설치하고 염전을 운영하였고 민간염전으로 금홍염전, 영일염전, 신흥염전등이 있었다.
80년대 염전 면적은 300정보(1정보는 약 3천평) 규모로 영종도는 한때 ‘잘 나가는’ 소금 생산지였다. 지난 2001년 소금시장 완전개방 이후 값싼 수입산 소금에 밀리더니 급기야 생산한 소금을 창고에 고스란히 쌓아둘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소금시장이 개방되자 정부는 어려워진 염전업자들에게 폐업보상을 하여 염전은 잡종지로 변경되었다.
2007년에는 150정보로 줄었으며 당시에도 ‘해수피아’근처에는 소금밭 60여 동의 소금창고가 2km에 걸쳐 있었다. 영종도에 남은 염전들은 도시계획사업에 따라 영업보상을 받아 폐허가 되어버렸다. 223번 304번 정류장인 ‘금홍염전’은 위치는 인천대교부근이었다.
용유에는 왕산염전과 늙목염전이 있었는데 늙목은 ‘을왕동 179-2’에서 동양염전으로 소금을 생산하는 인천중구 유일의 상업염전이다. 이곳에서 만난 동양염전 생산자중의 한분인 77세의 안경남 염부는 40년 이상을 늙목을 지킨 산증인이었다. 중구에서 유일하게 남은 염전을 지키며 양질의 소금을 생산하는 것에 자부심을 가졌다. 기자는 ‘용유교회’ 삼거리에 위치한 직판장에서 2014년도 산 천일염 20kg 1포대를 1만원에 구입했다.

■ 염전테마정원
씨사이드파크 총면적은 1,771k㎡ 이고 공원총길이는 7.8km이다. 이 중  80,000㎡ 이 염전으로 조성되고 있다. 염전내에 조류관찰대,전망데크,염전창고,인부휴게실이 있으며, 염생식물원 및 조류서식지, 소금체험장 등이 조성되고, 장차 인공적으로 조성한 공간이 자연적 공간으로 복원 될 것이며 학생들의 훌륭한 교육 체험장이 될 것이라는 영종사업단의 설명이다.
인천광역시시설공단 영종사업단이 관리하는 이곳은  건국대재단에서 방조제를 축조하여 만든 ‘건대염전’ 자리였다. 취재시에도 최영배 반장과 4명의 직원들은 초복의 더운 날씨에도 늦게까지 염전시설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들 몇몇 분은 예전 금홍염전과 영일염전에서 염부로 40년간 일을 하셨던 분들이다. 9년간 일손을 놓고 있다가 지난 4월 시설공단 염전반 소속으로 기간제근로자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분들은 모두 반길안과 은골 용숫말등 영종의 원주민들이다. 40년 경력의 최반장에 의하면 늦어도 내년에는 ‘영종도소금’을 맛볼 수 있다는 것.
예전에 비해 소규모의 염전이지만 옛 ‘영종도소금’이라는 양질의 소금을 생산할 수 있도록 시설공단의 염전테마정원 조성에 특별한 관심과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 소금의 종류와 생산 과정
천일염이 들어오기 전에 우리나라는 대부분 자염으로 소금을 충당했다. 煮鹽은 한자의 뜻대로 바닷물을 말린 갯벌 흙으로 우려내 염도를 높인 다음 끓여서 소금을 만드는 것이다.
 ‘소금산업진흥법’에 의하면 「소금」이란 일정한 비율 이상의 염화나트륨을 함유(含有)한 결정체와 함수를 말하며, 종류에는 ‘천일(天日)염’(염전에서 바닷물을 자연 증발시켜 생산하는 소금을 말하며, 이를 분쇄·세척·탈수한 소금) ‘정제소금’(결정체소금을 용해한 물 또는 바닷물을 이온교환막에 전기 투석시키는 방법 등을 통하여 얻어진 함수를 증발시설에 넣어 제조한 소금)
‘재제조(再製造)소금’(결정체소금을 용해한 물 또는 함수를 여과, 침전, 정제, 가열, 재결정, 염도조정 등의 조작과정을 거쳐 제조한 소금) ‘화학부산물소금’(화화물질의 제조·생산·분해 등의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로 제조한 소금) ‘가공소금’(정제소금·기타소금을 볶음·태움·첨가내지 조작을 통하여 질을 변경한 소금)  기타소금으로는 암염, 호수염이 있다.
「염전(鹽田)」이란 소금을 생산·제조하기 위하여 바닷물을 저장하는 저수지, 바닷물을 농축하는 자연증발지, 소금을 결정시키는 결정지 등을 지닌 지면과 소금창고 등 시설을 포함한다.
소금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먼저 바닷물을 저수지에 가둔 뒤 난치(염도가 3~5도 되는 제1염도 조절지)· 늦태(염도가 10~15도 되는 제2염도 조절지) 지역에서 바닷물을 증발시켜 염도를 높이고 염판에서 결정이 만들어지면 창고에 저장하는 것이다.
바닷물을 수차(현재는 전기모터이용)로 이동시켜 여러 단계의 염전을 통하며 수증기를 증발시켜, 사금파리 염판에서 염도가 27%가 되면 소금결정체가 생긴다. 천일염은 결정지만 넓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면적의 증발지가 확보되어야 한다.
소금 생산 시기는 3월초에서 10월말이고 생산량이 많은 시기는 7월에서 9월이다. 국산 천일염은 농도가 80% 안팎이며 미네랄이 풍부해 김치, 젓갈, 장류 등을 담그는 데 적합하다. 반면 중국산은 국산보다 농도가 10% 이상 높아 김치를 담으면 물러진다.

 


홍승준 선임기자  @ 소금은 바다의 砂金(사금)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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