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민선 지자체 시대 영종용유 기초일꾼 16명 선출’

이영석 기자의 재미있는(?) 영종도 이야기 18 이영석 기자l승인2019.01.21l수정2019.01.21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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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1년 민선 구청장이 탄생하면서 본격적인 지방자치시대를 열었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광역의회와 기초의회 의원을 국민의 손으로 뽑았다.
인천 중구도 마찬가지다. 1991년 초대 중구의회를 구성했다. 당시 중구의회는 중구 13개동을 대표해 13명으로 구성됐다. 인구가 상관없이 각 행정동마다 1명씩 선출됐다.
당시 영종동에서는 김홍복, 용유동에서는 차석교 의원이 당선됐다. 재미있는 것은 뒤에 김홍복 의원은 중구농협 조합장에, 차석교 의원은 인천수협 조합장을 역임했다.
영종동에서는 2~4대에 조영환 의원이 당선됐다. 조 의원은 3선 이후 후배에게 자리를 내줘 물러남의 아름다움을 보여줬다. 용유동에서는 나종원-최익만-이태호 의원이 자리를 바꿔 앉았다. 3대부터는 중구시내 내경동, 인현동, 신선동이 없어지고 중앙동이 동인천동이 되면서 중구의원이 10명으로 줄었다.
5대에서는 각 동이 아닌 가, 나, 다선거구로 나뉘면서 인구수로 나뉘었다. 영종용유가 속한 다 선거구에서는 김정헌, 유건호 의원이 당선됐다. 후에 김정헌 의원은 인천시의원으로 선출됐으며 유건호 의원은 중구농협 조합장으로 자리를 바꿨다. 당시 중구 나 선거구의 김재기 의원의 아들은 2002년 월드컵스타인 김남일선수였다. 이때부터 비례대표제가 있어 용유 무의도에 거주하는 김창복 의원이 비례대표의원이 됐다.
6대에서는 지역구가 가, 나 선거구로 바뀌면서 영종용유지역은 중구시내의 신포, 송월, 북성동과 같은 지역구가 됐다. 당시 영종도에 거주하는 김규찬 의원이 당선됐다.
김규찬 의원은 소수정당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당선된 것은 통행료운동 등으로 지역주민의 뇌리에 깊이 남았다는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5대에서 김규찬 당시 후보는 유건호 당선자에게 38표라는 근소한 차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당시 유 당선자는 자정에 후보사무실 문을 잠그고 쓸쓸하게 집에 돌아갔으나 운서동 공항신도시 마지막 투표함이 개봉되자 200여표차를 뒤집었다. 일설에는 공항교회 인근 투표함이라고 전해진다. 유건호 의원은 지금 공항교회 장로로 재직중이다.
7대에서는 김영훈, 김규찬 의원이 영종도에 거주하면서 당선됐다.
8대부터는 영종1동이 행정동으로 분동돼 영종동, 영종1동, 운서동, 용유동이 하나의 지역구가 돼 선거를 치렀다. 결과 최찬용, 강후공, 이성태 의원이 당선됐다. 김영훈 의원은 안상수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겨 출마하지 않았고, 김규찬 의원은 인천공항공사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회사에 복귀에 출마하지 않았다.
민선 20년 그나마 중구의회 의원들이 노력으로 일부 발전하였으나 기초의회 무용론이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영종용유는 각종현안이 많은 지역인 만큼 중구의회 의원들이 노력이 필요한 곳이다.


이영석 기자  air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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