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종도 지방명문가 김해 김씨, 경주 김씨, 안동 장씨

이영석 기자l승인2020.08.18l수정2020.08.18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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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지방호족이란 말이 있었다.
중앙 사대부와 달리 지방마다 권세가 있는 집안을 일컫는 말인데 영종도에도 지방호족이 있었다. 200~300년전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진 김해 김씨와 경주 김씨, 안동 장씨다. 대부분 영종도에 터전을 잡고 뿌리를 박고 집성촌을 만들었으며 다른 성씨보다 원주민이 많아 탄탄한 가문내력을 보이고 있다.

김해 김씨
대략 조선 인조시대 3개의 성씨가 영종도에 들어온 것으로 추측되나 여러 설이 있다. 첫 번째 설은 인조반정이후 논공행상 등으로 영종도에 직을 하사하여 보냈으며 3개의 가문을 보내 서로 견제하려 했다는 것과 귀양을 보냈다는 설이다.
그러나 재산과 식솔이 있고 사후에 고향에 묻힌 것 등을 감안하면 첫 번째 설에 무게가 실린다.
당시 3개 가문은 서로 양반으로 혼인으로 맺어져 영종도에서 계속 살아온 것으로 파악된다.
혹자는 영종도가 조선시대 때 여러 번 섬을 비우는 소개명령이 내려져 200년 이상 된 원주민이 없다고 하나 당시 재산이 영종도에 있는 까닭에 다시 영종도에 들어왔다는 반론도 있다.
먼저 가락 김해 김씨가 영종도 유명한 호족집안이었다.
김해 김씨의 직계종파는 김목경을 파조로 하는 경파(京派), 김익경을 파조로 하는 사군파(四君派), 김관을 파조로 하는 삼현파(三賢派)가 있다. 여기에 경파, 사군파, 삼현파마다 각각 세부적인 인물을 중조로 하여 총 24개의 공파로 구분되어 있는 등 계보로 나뉜다.

영종도에 있는 호족 김해 김씨는, 판도판서공 ‘김관’을 중시조로 한 삼현파  판도판서공파다.
신라계 김해 김씨는 김녕 김씨라고 하여 가야계 김해 김씨와 구분한다.
김해 김씨 영종종친회에 따르면 영종도에 최초로 정착한 김해 김씨는 1645년 출생하고 1722년 사망한 ‘김성원’으로 현재 신불도 스카이72 하늘코스에 묘가 있다가 1993년 인천공항 개발로 사당인 영현당에 봉안됐다. 
김일손(1464년 ~ 1498년 7월)의 후손이었던 김성원은 무오사화의 여파로 전라도와 충청도를 거쳐 신불도에 정착하게 됐고 이후 후손은 운서동을 중심으로 삼목도와 진등, 용수마을 등지에 거주하게 됐다.
김일손은 조선 성종·연산군 때의 문신이며 학자, 사관, 시인이다. 성종 때 춘추관의 사관으로 있으면서 전라도관찰사 이극돈 등의 비행을 그대로 적었고, 윤필상 등의 부패 행위도 사서에 기록했다. 1498년에 <성종실록>을 편찬할 때 앞서 스승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에 실은 것이 이극돈을 통하여 연산군에게 알려져 사형에 처해졌다.

현재 영종도에는 ‘홍’자 돌림자를 기준으로 판도판서공휘파 24대손이 50~60대로 주축을 이루며 문중장손은 김진영 공항교회 장로다.
김홍섭 전 중구청장과 김홍복 전 중구농협 조합장도 가야 김해 김씨다. 영종에 ‘김홍O’의 이름을 가졌다면 일단 김해 김씨로 봐야 한다.
김해 김씨는 신불도에서 유교와 불교가 반영된 조상숭배의 제를 꾸준히 모셨다. 영종도 각지로 퍼지면서 마을별로 제를 모시다 1900년대 들어서 운서동 1624-2번지 문중전체로 제를 모셨다. 1980년대 들어서 본격적인 사당 건립을 추진하게 됐다.
사당건립은 재일교포 사업가가 당시 1억원의 거금을 쾌척하면서 종친들이 일부기금과 노동을 제공하여 1년여의 공사 끝에 진등에 사당을 짓게 됐다. 진등은 공항고속도로 옆으로 지금 옛 밀라노디자인시티 옆 부지다.
김해 김씨 영종종친회는 사당에 선조 유골 120기를 봉안하고 주기적으로 제를 지내고 있다.

이 사당은 팔각형식의 지붕구조와 입공식의 건물구조로 단청을 써 사료가치가 높다. LH의 개발로 이전 부지를 받으면 새 부지로 이전해야 한다. 그러나 김명신 종친회 총무는 현재 사당을 존속시켜야 하며 김해 김씨뿐만 아니라 역사적 가치도 높다고 주장했다.
김해 김씨는 순조~철종시대에 무과급제를 많이 하였으며 종이품인 가선대부겸 오위장과 무과급제 벼슬에 오른 것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 시대적 환경속에서 문무양면으로 활약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지금도 중구청장을 비롯해 구청과 교육청 등의 공무원에 김해 김씨가 다수 포진돼 있다. 전국에 김해 김씨는 450만명으로 추정되며 영종도에는 약 400명안팎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
된다.

경주 김씨
다른 명문가 경주 김씨의 경우 인조반정으로 왕인 된 인조시절 조상 ‘김봉필’이 영종도에 들어왔다고 후손들은 전한다. 
김봉필은 인조 을묘년에 어영장군까지 올랐다고 한다.
경주 김씨는 통일신라 경순왕때 아들 7명중에 셋째와 넷째에게 경주 김씨를 하사했는데 셋째는 영분공파로 남도쪽에 주로 거주하고 있으며 넷째 상촌공파는 한강유역일대에 거주하게 됐다고 전해온다.
영종도에 사는 경주 김씨 중시조인 김봉필은 지금의 연천군 전곡읍에서 영종도로 들어왔다. 아들은 김한영, 한순, 한대이며 정확히 경주 김씨 상촌공파 자랑공 개성군의 후예라고 후손들은 말한다.
김봉필 사후 묘소를 경기 연천 전곡에 썼는데 시신의 상태로 육로가 아닌 배를 이용해 운구를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한강에서 경기 연천을 소금배가 다닌 만큼 물길로 갈 개연성이 충분하다.
이들은 영종도 월촌에 선산이 있었지만 개발로 연천의 종중선산으로 이장을 했다.
지금 영종도에는 김봉필 조상의 10세손 김O환, 11세손 김기O, 12세손 김O호, 13세손 김택O를 돌림자로 쓰는 후손이 살고 있다.

대부분이 영종 중산동 돌팍재에서 운남동 전소까지 도로근처에 주거가 있다.
중종장손은 중구 신흥동에 사는 김내호씨이며 현재도 경기 연천에서 제를 지내고 있다. 영종도에는 김삼일(아명) 종친회장이 영종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족보에는 김심환으로 적혀있다. 영종도 종친회는 김삼일 회장을 중심으로 김기묵, 김영호 감사가 있고 김기일 서기가 기록을 맡고 있다. 종친회 이사도 10명까지 선정해 깔끔한 종친회를 이끌고 있다. 
종친회에 재산으로 이자가 매년 1000만원정도 들어와 이 돈으로 종친회에서 장학금을 자손에게 전해주고 있다. 
영종도 전기를 끌어 들인 古 김기호 前 한전 본부장과 김문환 前 면장 등 공무원을 다수 배출했다.  

안동 장씨
영종도에 들어와 있는 안동 장씨는 인조반정이후 인조시대 영종도에 들어온 것으로 안동 장씨 족보에 기록돼 있다.
영종도에 사는 안동 장씨는 장양공파 영종파다.
안동 장씨 장양공파는 현재 지역을 중심으로 종친회를 구성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그래서 영종도에 사는 안동 장씨를 영종파로 지칭한다.
안동 장씨 종친회와 족보에 따르면 조선 연산군 시절 한양에 살던 장서운에게 아들이 둘이 있었는데 큰아들 장한공이 인조반정으로 문의정국공신으로 공신반열에 올랐고 둘째아들 장한성이 영종도에 선정관으로 내려오면서 영종도와 연을 맺게 됐다.
한성의 아들 후량은 이후 가선대부 직책을 하사받았으며 제원은 어포장군 무관으로 제수받았다.
영종도에 사는 안동 장씨는 장양공파 영종파는 장서운으로 기록돼 있으나 아들 한성이 영종도에 들어왔으니 장한성을 파조로 보는 것도 틀리지 않는다.
장서운이나 그의 아들 장한성을 파조로 보면 지금 영종도에 사는 후손은 13~18대손이다.

종중 장손은 95세의 장갑동옹으로 인천에 거주하고 있으며 영종도는 종친회장으로 장원섭 회장이 무의도에 살고 있다. 장태동 총무가 업무를 맡고 있다.  매년 제를 강화에서 지내고 영종도로 와 하늘도시 종중재산인 주택에서 별도로 지내고 있다.
영종도 안동 장씨는 돌림자가 없으나 대부분 형제끼리 돌림자가 있어 영종도에서는 집안내에서 서로를 익히 알고 있다.
안동 장씨도 영종 진등에 봉안당이 있었으나 인천공항과 하늘도시 개발로 인해 인천 강화로 옮겼다.
장익환 전 영종중학교장 등 교육공무원과 행정공무원을 다수 배출한 집안내력이 있다.

지역문화재 김해 김씨 사당 역사유물로 보존해야
풍파와 수해로 사당 일부 무너지기 일보 직전 일개 문중 재산 아냐

지금 지도에서 사라진 영종 진등 옛 밀라노디자인 시티 옆에 가면 김해 김씨 사당이 있다.
이 사당은 수백년전 지어진 사당으로 일개 문중의 재산이 아닌 역사적 가치가 있는 지역문화재다.
이 사당은 당초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수용하는 조건으로 같은 진등에 있던  옛 인천화약고 자리를 내주고 옮기기로 하였으나 이행하지 않고 있다.
그런 가운데 온갖 풍파와 수해로 사당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LH는 사당으로 가는 길을 막아 봉쇄했다.
종친회 관계자는 “LH는 당초 대체부지공급의사가 없는 것 같다. 하루빨리 LH가 약속만 지키기를 바란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이지역은 인천국제공항과 접하고 있어 ‘항공법’, 인천경제자유구역으로 ‘경제자유구역법’등이 적용되어 한국LH공사가 독자계획을 수립, 시행하기에 난제가 수두룩하다.
이에 대해 종친회 관계자는 “운북동 공원묘지 한계상황(만장)에 대비해 종친회 사당 인근에 LH가 시립봉안당 설치계획이 있었으나 계획으로만 남아있다.”고 전했다.
LH는 “사당으로 가는 길을 막은 것이 아니라 쓰레기무단투기, 범죄우려지역으로 막았다”고 밝혔다.

2016년 12월 중구청은 <중구 향토문화유산 보호조례 제정>공포 함에 종친회는 향토문화로서 존치를 계속 희망하고 있다.
인천 단청 무형문화재이자 해명단청박물관 정성길 관장은 “사당의 특징은 복합문양의 단청으로 천연안료를 사용하였고 원형을 유지하고있는  영종 도서지역의 유일한 단청문화로 본다”고 하였다.
김명신 김해 김씨 전 종친회 총무는 “향토문화로서 400년 세월에 지역사회의 정신적 지주역활과 경제적 발전에 상당히 기여하였던 종친회로서 사당존치를 위한 검토와 관련기관과의 의견교환이 필요하다”고 전하고 있다.


이영석 기자  air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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